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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뜬봉샘, 봉황이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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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계센터
댓글 0건 조회 845회 작성일 24-10-0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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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뜬봉샘, 새 나라를 열기 위해 100일 수련을 하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실력을 극대화하는 ‘셀프리더십’(Self Leadership)이라고 할 수 있다.

셀프리더십은 자기 스스로 리더가 되어 자기 자신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뜻한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면서 자신을 이끌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뜬봉샘’에서 100일간 수련을 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성리학이 추구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은 곧 자연이다’(性卽理)를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훈련을 통해 거경궁리(居敬窮理)라는 자아의 세계에 대해 탐구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대정신에 맞는 사회의 개혁을 이룩할 수 있는 지도자(Leader)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펼친 것이다.

성리학적 이상세계의 구현을 꿈꾸었던 이성계는 자연을 찾아다니며 ‘경’과 ‘리’라는 자기 수양과 목적의식을 찾아 나간 것이다. 뜬봉샘이라는 곳은 자연이며 이곳에서 인간의 본성을 깨닫기 위한 자기수련을 펼친 것이다.

이는 자기 훈련이라는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새 나라 창업이라는 목적의식을 함양한 것이다. 뜬봉샘은 그에게 인간의 본성과 셀프리더십을 깨닫게 해준 공간적 배경이 된 셈이다.

어린 시절 이성계는 격구와 활쏘기 등을 통해 자기수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청소년 시절부터 스포츠와 무예단련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탄탄하게 쌓아왔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바탕으로 자기 인생의 목적의식을 다져갔을 것이다.

조선의 활쏘기는 널리 유행했고 그 솜씨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이웃나라에서는 어떻게든 조선의 활쏘기를 배우려고 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태조 이성계의 궁술은 백성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성계의 신기에 가까운 궁술실력은 고려의 명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으며 이후 고려를 마감하고 조선을 창업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활쏘기를 즐겨했고 장려했기 때문에 조선 전기의 활쏘기는 유비무환적인 군사훈련으로써 효용적 가치가 커졌다. 활쏘기를 단순히 사냥과 전쟁을 위한 무예로만 보지 않고 사람의 덕을 관찰하는 기준이자 인재를 선발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됨에 따라 사대부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무예의 하나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 한반도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수련과 기도를 했다. 이성계에게 수련은 스스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면서 자신을 이끌어 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자기성찰과, 자신의 목표의식에 대해 정진했다. 뜬봄샘에서 자기수련은 셀프리더십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2. 신들이 춤을 추는 신무산에서의 신비한 체험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신무산((神舞山, 897m) 8부 능선에 자리한 뜬봉샘(飛鳳川)은 금강의 발원지다. 뜬봉샘은 용담호와 용담댐, 금강하구둑 등을 지나며 약 400km를 흐르다 서해바다로 빠져나간다.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은 장수읍이 터 잡은 고원지대의 남단에 있다. 산세로 보자면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을 안고 있는 팔공산과 장안산을 잇는 산줄기의 중간쯤이다. 두 거봉 사이에서 훌쩍 낮아진 덕에 신무산은 자연스레 분수령을 이루는데, 산 바로 동쪽에 분수령의 다른 말이기도 한 수분령(水分嶺, 539m)이 있다.

고개 정상의 휴게소에는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 가는 곳’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고개에 떨어진 빗물은 단 1m 차이로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뜬봉샘은 수분령을 낀 수분마을 뒤편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뜬봉샘은 이성계의 건국 신화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이곳은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기도하던 곳으로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아 큰 봉황이 날아 올랐다 하여 ‘뜬봉샘’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이성계는 단 옆에다 상이암을 짓고, 옹달샘물로 제수를 만들어서 천제(天祭)를 모셨다고 한다. 뜬봉샘에 깃든 이성계의 전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계시를 받으려고 팔공산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100일째 되던 날 새벽, 단에서 조금 떨어진 기슭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떴다. 그 무지개를 타고 봉황새가 하늘로 너울너울 날았다. 봉황이 떠가는 공중에서는 빛을 타고 아련한 무슨 소리를 들었다.
이성계가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새 나라를 열라’는 천지신명의 계시가 귓전을 스쳤다. 이성계는 정신을 가다듬고 무지개를 타고 봉황이 날아간 자리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풀섶으로 덮힌 옹달샘이 있었다. 이성계는 하늘의 계시를 들은 단 옆에 상이암을 지었다. 옹달샘물로 제수를 만들어 천제를 모셨다. 옹달샘에서 봉이 떴다하여 샘이름을 뜬봉샘이라 했다. 이 뜬봉샘이 금강의 발원지이다.” (장수읍지, 전설 편)
새 나라를 건국하기 전, 이성계가 전국의 명산을 주유하며 수련과 기도를 드렸다는 기록이 많이 전하고 있다.

당시에는 개국을 하기 위해서는 명산의 산신령과의 교감을 통해 계시를 얻어야 개국의 정당성을 얻는다는 믿음이 백성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거사를 준비하기 전에 민심을 먼저 살피고자 하는 태조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고 신(神)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고자 했던 이성계의 수련에 대한 기록은 유독 전북지역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장수, 임실, 진안, 부안, 무주, 완주 지역에서도 이성계가 무예에 정진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는 실제로 황산대첩을 전후로 전북의 곳곳을 방문했던 이성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가 왕위에 오르기를 기대했던 태조 본향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설화와 전설로 전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새 나라를 세우려는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큰 힘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그 힘을 얻을 장소 중 한 곳이 바로 생명의 물이 샘솟는 뜬봉샘이었다. 이곳에서 영험한 기운을 받아 건국을 준비했다.

조선의 태조가 된 이후에도 관아로 하여금 신당과 상이암을 돌보라는 지시를 내려 현감이 직접 현지를 살폈다고 한다.

3. 뜬봉샘

장수군에서 탐방객의 편리를 위해 임도를 개설했다. 뜬봉샘과 신무산(897m)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비가 오고 안개가 낀 날이면 어디선가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여전히 뜬봉샘은 깊은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장수라는 지명은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만큼 높고 수려한 산세와 굽이굽이 휘도는 물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 고장이다. 장수(長水)라는 군 지명 역시 긴 물줄기를 뜻한다. 이 지역 7개 읍·면 가운데 5곳의 지명은 물을 의미하는 수(水)와 계(溪), 천(川)이 들어간다. 장계(長溪), 계남(溪南), 계북(溪北), 천천(天川)면인데 모두 물을 끼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유명한 뜬봉샘은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명소다.


4. 용계마을

장수읍 용계(龍溪)마을은 장수읍에서 산서로 가는 방향, 읍내에서 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성계는 1380년 9월 경 남원 황산의 왜구들을 정벌하기 위해 개성에서 자신의 친병인 가별대 부대 2천 명과 고려 군사 3천을 모아 약 5천 명의 군사로 이곳을 지나게 된다.

아마도 이성계 군대는 개성에서 한양을 넘어 금산을 지나 이곳에 당도했을 것이다. 당시 고려 조정은 진포대첩에서 패전한 왜구들이 남원 황산에 모여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성계 장군에게 이들을 소탕할 것을 명령한다. 이들이 지리산에 숨어들어 장기전을 펼칠 경우 백성들의 피해도 더욱 커질 것이 염려되는 대목이다.

이럴 경우 왜구 소탕에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한시가 급한 촉급한 상황이었다. 금산을 넘어 용계리에 도착한 이성계 군대는 긴 행군에 지친 나머지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게 된다.

왜군보다 먼저 황산에 도착하지 못하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지 못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성계 군사는 닭이 홰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 황산으로 달려갔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 왜구를 크게 물리쳐 황산대첩을 거두게 된다.


5. 비행기재

장수읍 용계마을에서 임실 상이암으로 가다 보면 13번 국도 비행기재(해발 471.6m)를 만날 수 있다. 산서면 황금들판과 산세 풍경이 수려하게 펼쳐져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곳을 지났을 이성계 장군도 잠시 이곳에 쉬어 그림 같은 산세를 감상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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