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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이밥사상을 실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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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계센터
댓글 0건 조회 612회 작성일 25-05-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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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해동육룡이 되어 나르샤

이성계(李成桂, 1335~1408)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역사적 스토리를 남긴 대표적인 인물이다. 4년여에 걸친 조선 건국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새 나라 창업에 성공한다.

1335년 함흥에서 태어난 이성계는 어릴 적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쏨씨가 뛰어났다. 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아버지 이자춘의 뒤를 이어 동북면 병마절도사가 됐다. 고려 공민왕을 도와 쌍성총관부를 수복했고,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냈다.

여진족 수장 나하추의 침략을 물리쳤고, 친원파 세력의 고려간섭을 저지했다. 1370년에는 요동정벌에 성공했다. 1380년 삼남지방을 괴롭혔던 왜구와 남원 황산 전투에서 대첩을 거두었다. 

홍건적, 여진족, 왜구 등 고려를 침범했던 외적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한반도와 만주 대륙을 누비며 동아시아 최고의 장수로 이름을 날린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도 이성계의 존재를 두려워 했다.

1388년 위화도회군(결단)을 통해 군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4년여 동안 민심을 얻는 정치과정을 통해 1392년 마침내 왕에 오르게 된다.

위화도회군, 결단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선택하고 결단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 판단을 하지 못할 때 비전을 제시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위화도회군’은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결단의 순간이다.

위화도에서 회군이라는 결단을 통해 방향을 제시한 이성계는 자신의 참모들과 함께 앞으로 고려사회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성계가 생각한 첫 번째 비전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다. 단군 이래 여러 성왕들의 정치를 살폈을 것이고, 이웃 나라 중국의 사례도 참조했을 것이다.

하늘의 선택을 받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 왕을 중심으로 성리학적 사상으로 무장한 재상들이 왕을 도와 선정을 펼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민생중심의 ‘농본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토지개혁과 농본주의로 인해 백성들은 세금을 덜 내고, 농업은 더욱 풍요롭게 된다. 배가 넉넉해진 백성들은 이성계가 내어주는 밥이라고 해서 ‘이밥’이라고 했다. 이러한 민생정책들이 바로 이성계는 ‘이밥사상’이다. 

마지막으로 이성계가 제시한 비전은 바로 위민정치(爲民政治)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개혁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려 사회 안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이 개혁에 강하게 저항했다. 이들에게는 지금의 고려사회가 자신들의 재산과 명예를 지켜주기 때문이었다.

위화도회군에서 조선 건국까지 약 4년 동안 이성계는 자신이 선택한 결단과 비전을 수행하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한다. 아마도 이 과정은 요동과 만주벌판에서 외적과 싸우던 것 보다 오히려 훨씬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밥사상을 펼치다

이러한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비전’(이밥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1383년 정도전은 동북면으로 향했다. 이성계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친원(親元) 정책을 내세우던 조정 대신들에게 맞서다 유배형을 받은 지 8년이 지난 때였다.

이 만남은 조선왕조 개창의 첫 단추를 꿰는 운명적 회동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성계의 군사력과 리더십이 정도전의 사상 및 이념과 결합하면서 ‘혁명무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성계는 정도전을 제대로 알아봤다. 유비가 제갈량을, 한(漢) 고조 유방이 장량을 책사로 기용해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이성계는 정도전의 출중한 능력과 원대한 비전을 단숨에 꿰뚫어 본 것이다.

훌륭한 군왕이 되려면 용인술을 갖춰야 한다. 인재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주군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이성계는 짧은 만남에서도 정도전의 왕재(王才)를 알아챌 만큼 인재를 간파하는 안목이 높았던 셈이다.

새로운 국가 건설의 주역이었던 이성계 리더십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체는 비전(vision)형 리더십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전형 리더십은 조직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리더십이다.

비전형 리더십은 조직구성원들이 리더를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리더십이다. 비전형 리더십을 가진 리더는 스스로의 생각을 먼저 말하고,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면서 조직을 인솔한다.

이성계 역시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신진사대부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나라가 가져야할 비전을 제시하게 하고 이에 귀를 귀울인다.

토지개혁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개창할 나라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한다. 위민정치를 통해 집권 세력의 모든 방향이 백성들의 이익을 향할 것임을 제시한다.

여말선초, 혼돈의 고려사회에 이성계의 방향성 있는 비전제시는 사회 개혁을 바라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 향후 고려사회가 나아가야 할 사회적 합의(consensus)를 형성한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혈혁명이다.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이성계가 제시한 비전이 고려사회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기득권 사회도 승복한 것이고, 고려 백성들 역시 이성계 집권 세력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은 총칼보다 그래서 위력적이다.

이성계, 새 나라를 창업하다

고려는 종말을 맞이했다. 역성혁명파는 공민왕의 부인이자 대비인 정비에게서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고려의 왕으로 삼는다는 교지를 받아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고려의 도읍 송도에 있는 수창궁에서 즉위했다.

이성계의 즉위는 고려의 도읍 송도를 경악하게 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이미 이성계가 왕조를 찬탈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하급관리들이나 백성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이성계는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이 때문인지 송도에서의 반발은 눈에 띄지 않았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이튿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 이성계는 크게 기뻐하고 백관에게 명을 내려 고려 왕조의 정령(政令)과 법제(法制)의 장단점과 변천되어 온 내력을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게 했다.

이성계는 고려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계획이었다. 이는 정도전 등이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생각이었다. 이들의 개혁 정책이 두드러진 것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었다. 또한 성리학을 장려하여 도학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정도전이 중심이 된 개혁 사대부 세력은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며 조선을 건국했다. 이들은 조선을 이전과 다른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나라로 만들려 했다. 왕은 존재하지만 권력 행사는 극히 제한하고 재상이 중심이 된 정치 시스템을 실현하려 했다.

지금의 입헌군주제와 같은 방식으로 왕은 재상을 임명하기만 할 뿐, 국정운영은 재상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권력의 견제와 감시는 언관 제도를 활용하도록 했다. 권력 기관이 상호 작용을 통해 권력자의 독단을 막고 합의에 의한 국정 운영을 하도록 했다.

조선 초 집권세력은 민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그들의 국정 운영 철학이 위민사상(爲民思想)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임금이 중히 여겨야 할 10가지 항목

3일 뒤인 7월 20일 조선시대 감찰기관인 사헌부에서 이성계에게 임금이 지켜야 할 10가지 항목을 상소로 올렸다. 상소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2. 상주고 벌주는 일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한 올의 사심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3. 군자는 가까이 하고 소인은 멀리 해야 합니다.
4. 충언을 받아들이십시오.
5. 아첨과 고자질을 근절하십시오.
6. 무사안일과 욕망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7. 매사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숭상하십시오.
8. 환관들을 멀리하십시오.
9. 불교를 개혁하고 승려들을 배척하십시오.
10. 궁의 위엄을 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신하가 임금이 지켜야 할 항목을 상소로 올린 것이다. 위로는 하늘이 돌보아 주신 명령을 저버리지 말고 아래로는 신민이 추대하는 뜻을 배반하지 않아서 억만년 무궁한 경사를 이룰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태조 이성계는 “환관과 승려를 물리치는 일은 건국 초기에 갑자기 시행할 수 없지만 나머지는 모두 시행하겠다”고 화답했다. 10가지 항목들은 6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위정자들이 새겨보아야 할 항목들이다.

왕과 신하간의 이러한 관계는 후에 경연(經筵)으로 이어진다. 경연은 임금과 신하가 학문과 정치에 대해 논하는 자리이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하자 마자 경연관을 설치하고 경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태조 이성계가 추구했던 것은 왕도정치이다. 요순 임금으로부터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군주들의 도(道)를 깨우쳐 인자한 정치(仁政)를 펼치는 것이다. 철인군주정치인 셈이다. 또한 군주가 현명한 재상을 선택하여 제도적인 통치를 실현할 때 이것이 곧 위민정치라고 생각했다.

이성계의 취임사

7월 28일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알리는 ‘즉위교서’가 반포됐다.

“왕은 이르노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낳아서 군장(君長)을 세워, 이를 길러 서로 살게 하고, 이를 다스려 서로 편안하게 한다. 그러므로, 군도(君道)가 득실(得失)이 있게 되어, 인심(人心)이 복종과 배반함이 있게 되고, 천명(天命)의 떠나가고 머물러 있음이 매였으니, 이것은 이치의 떳떳함이다. (중략)
그 나머지 무릇 범죄한 사람은 일죄(一罪)로서 보통의 사유(赦宥)에 용서되지 않는 죄를 제외하고는, 이죄(二罪) 이하의 죄는 홍무(洪武) 25년(1392) 7월 28일 이른 새벽 이전으로부터 이미 발각된 것이든지 발각되지 않은 것이든지 모두 이를 사면(赦免)할 것이다.” <태조실록,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

즉위교서는 태조 이성계의 취임일성이다.

“왕은 말하노라. 하늘은 백성들 가운데 군주를 세우고, 그 군주로 하여금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게 했다. 따라서 왕도가 올바르면 백성들이 따르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민심이 배반해 떠나가는 것이 이치이다. 이것이 바로 천명이다.”
백성들의 민심이 떠나가 고려가 버려졌고, 자신이 천명을 받아 새로운 왕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또한 자신의 개국 시점을 기해 모든 죄를 용서하는 대사면을 단행한다. 조선개국에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정도전이 지은 즉위교서에는 태조 이성계의 새 나라에 대한 비전이 17항에 나뉘어 담겨 있다.

첫째 항목은 종묘사직을 바로잡고 고려 왕족을 대우하겠다는 의례적인 것과 과거시험의 개혁 방안이 제시됐다. 문과와 무과 그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약속과 중앙과 지방 그 모든 곳에서 인재를 고루 육성하겠다는 의지, 고려 왕조의 과거제에 대한 비판 등 문무 관료들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지방관리를 뽑을 때 추천제로 하고 만약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면 추천한 사람이 처벌받도록 했다. 충신, 효자, 효부들을 특별 우대하고 등용할 땐 가산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홀아비, 과부, 고아,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고의 회계 출납을 엄격히 관리하고 국가 재산을 사적으로 이용한 자는 강력히 처벌토록 했다. 해군을 또한 우대했다. 호포(戶布) 감면과 국둔전(國屯田, 군사용 땅) 폐지 등 민생을 추스르기 위한 개혁안이 포함됐다. 법치주의를 강화했고 개국 이전의 범죄에 대한 사면령을 단행했다.

17항목에 달하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개혁 방안이 담겨 있다. 모든 계층의 현안을 포착하여 민심을 얻으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이성계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자 ‘모든 백성이 밥을 배불리 먹는 나라’(이밥사상)가 조선 창업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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